세계에 이름난 조선비단
우리 나라의 비단은 가볍고 질길뿐아니라 아름다운 무늬와 부드러운 손맛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먼 옛날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견직물의 하나로 일러온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원시시대 말기와 고대시기에 베, 모시와 함께 질좋은 비단들을 많이 생산하였다.
황해북도의 봉산군 지탑리유적을 비롯한 우리 나라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들에서 누에를 형상한 질그릇들이 발굴되였는데 이것은 이미 고대이전 원시 말기부터 비단이 생산되고있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중국의 력사책들인 《한서》(1세기)나 《삼국지》(3세기)에는 고조선에서 누에치기가 상당히 발전된 수준에서 진행된다고 하였으며 부여에서는 사람들이 외국에 갈 때 여러가지 화려한 비단으로 옷을 해입고 갔다고 기록되여있다.
삼국시기에는 우리 나라의 비단짜는 기술이 일본에까지 전파되였다. 고대일본의 력사를 기록한 《일본서기》(8세기)에는 4~5세기부터 7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우리 나라의 비단짜는 기술자들이 일본에 건너가 그 기술을 전수함으로써 일본에서 비단이 생산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고려시기에는 비단생산기술이 더 발전하고 그 종류도 훨씬 늘어났을뿐아니라 그 질이 또한 우수하여 이웃 나라는 물론 멀리 중근동에까지 수출되여 세계에 《고려비단》으로 알려지게 되였다.
리조시기에는 전국각지에 뽕나무를 많이 심고 물이 좋은 곳마다 이름난 비단생산기지들을 꾸리였다. 그가운데서 특히 유명한 지방은 평안북도의 녕변, 평안남도의 성천, 함경남도의 금야, 정평, 고원, 리원, 홍원, 북청, 단천, 함경북도의 길주, 명천, 강원도의 철원, 황해북도의 수안, 전라도의 라주, 경상도의 안동 등이였다.
우리 나라 비단천중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이름지어주신 《약산단》과 《구룡단》이 있다.
어느해인가 녕변견직공장 일군 및 로동자들을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공장로동자들이 짠 비단천시제품을 보아주시면서 진달래꽃문양을 놓은 비단천과 물결모양을 놓은 비단천의 이름을 짓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녕변에는 유명한 약산동대가 있고 약산동대에는 진달래가 많으므로 진달래꽃문양을 놓은 비단천은 봄이면 진달래꽃들이 만발하는 약산동대의 이름을 따서 《약산단》이라고 하는것이 좋겠다고, 은근한 물결모양을 놓은 비단천은 약산동대아래로 흐르는 구룡강의 이름을 따서 《구룡단》이라고 하는것이 좋겠다고 천히 비단천의 이름까지 지어주시였다.
오늘도 조선비단은 그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빛갈과 부드러운 촉감으로 하여 우리 인민들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속에서도 호평을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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